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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본문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 중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살펴보겠습니다. 경상북도 영주 부석면 봉황산에 위치한 부석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사찰입니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사 및 산지승원 7개 사찰(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중 하나입니다.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국보 5점과 보물 6점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제17호), 무량수전(국보 제 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무량수전 내 소조여래좌상(국보 제 45호),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자인다 비로자나여래좌상(보물 제 220호), 자인당 석가여래좌상(보물 제 1636호), 삼층석탑 (보물 제 249호), 당간지주 (보물 제 255호), 고려각판 (보물 제 735호), 오불회괘불도 (보물 제 1562호) 입니다.
▣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제 255호)
영주 부석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로 보물 제 255호입니다.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의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 영주 부석사 일주문
태백산부석사 현판이 보이는 영주 부석사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은 기둥이 일렬로 세워져 있는 문이라는 뜻으로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문입니다. 세속의 번뇌를 씻고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오란 상징적 의미입니다. 일주문 뒷편 해동화엄종찰 현판이 있습니다. 중국화엄종과 구별되는 우리나라 화엄종사찰이란 뜻입니다.
▣ 영주 부석사 천왕문
천왕문은 사찰의 두번째문입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곳으로 동쪽은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 남쪽은 칼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 서쪽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광목천왕, 북쪽은 보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이 있습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통일신라 후기 양식의 2개의 3층석탑이 동쪽과 서쪽에 있습니다.
▣ 영주 부석사 범종루
부석사에는 두개의 누각이 있는데 그중 첫번째인 범종루입니다. 정면 3칸, 측면3칸, 주심포식, 중층 구조의 부석사 범종루는 지붕이 특이한데 정면에서 보면 팔작지붕의 측면이 보입니다. 누하진입 방식으로 계단을 올라가 건물 뒤쪽을 보면 맞배지붕의 측면이 보입니다.
▣ 영주 부석사 안양문, 안양루
범종루를 지나면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사찰의 마지막 문인 불이문 역활을 하는 안양문이 나옵니다. 누하진입 방식의 누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입니다. 부처의 영역인 극락정토를 의미하는 무량수전으로 들어 가기 위한 관문으로서 안양루 밑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졌습니다.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정면5칸, 측면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배흘림 기둥으로 통일신라시대 창건 된 무량수전은 고려 공민왕 때 한번 불탄 후에 고려 우왕때 재건한 건축물로 광해군때 단청을 새로 칠했습니다. 무량수전 안에는 국보인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이 있고, 무량수전 앞에는 국보인 화강암으로 만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이 있습니다. 사각으로 이뤄진 무늬 바닥돌과 팔각기둥 위에는 가운데 기둥을 받치는 연꽃 조각이 있습니다.
1916년 무량수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를 통해 고려시대 건물임을 입증했습니다. 묵서에 따르면 1358년 왜구가 침입해 건물이 불탄 것을 1376년 원응국사가 고쳤다고 합니다. 대략 100년에서~150년 전인 1200년대에 부석사 무량수전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무량수전의 글씨는 공민왕이 쓴것이라 합니다.
창호 구조도 특이한데 왼쪽끝과 오른쪽에 있는 두개의 창과 중앙 세칸 양쪽 끝창은 들어올리는 구조로 중앙 세칸 중앙의 창호는 여닫이로 구성하여 창호를 모두 들어 올리면 무량수전의 장엄함을 볼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조사당은 무량수전 뒷산에 있는 건물로 고려시대 1377년 우왕 3년에 원응국사가 재건한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작은건물로 의상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1490년 성종 21년에 중수하고 1573년 선조 6년에 서까래를 수리 했다고 합니다. 옆의 철창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꽂아놓은 지팡이에서 가지가 돋고 잎이 나며 나무가 되었다고 하는데 조사당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푸르게 잘 자라 신비감을 줍니다. 언젠가 부터 이파리를 따다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너도나도 따먹어 나무가 고사 위기에 처해 철창을 씌웠다고 합니다. 부석사선비화라고 합니다. 조사당 내부에는 국보인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입니다.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국보 5점과 보물 6점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제17호)
무량수전 (국보 제 18호)
조사당 (국보 제19호)
무량수전 내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 45호)
조사당 벽화 (국보 제46호)
자인다 비로자나여래좌상 (보물 제 220호)
자인당 석가여래좌상 (보물 제 1636호)
삼층석탑 (보물 제 249호)
당간지주 (보물 제 255호)
고려각판 (보물 제 735호)
오불회괘불도 (보물 제 15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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