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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장경판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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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장경판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킴아카 2022. 8. 29. 19:52

 

ㅣ 해인사 장경판전

경남 합천군 가야산에 위치한 해인사의 장경판전은 고려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15세기에 건축된 조선초기의 서고로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서관 입니다. 국보 제52호이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목판을 효과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자연통풍과 온도와 습도의 적절한 조절이 가능하도록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건물로, 모두 네군데의 보관소가 있습니다. 앞면 15칸 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  북쪽건물은  <법보전>  이라고 합니다. 서쪽에 있는  <서사간판전>  과 동쪽에 있는  <동사간판전>  은 앞면 2칸, 옆면 1칸 규모의 서고입니다.  전체적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통풍을 위해 건물을 서남향으로 배치하고, 아래 위 2층 구조로 창문을 설치했는데, 건물 남쪽은 아래창이 윗창보다 크게하고 건물 북쪽은 반대로 제작하여서 바람이 남쪽 아래 큰창으로 들어와 경판사이를 돌며 위로 올라가서 북쪽  위의 큰창으로 빠져 나가는 원리를 이용하여 건조한 공기가 건물 내부에 골고루 퍼지게 공기의 흐름을 조절했습니다.  장경판전 흙바닥 속에 숯, 석회, 소금, 모래를 함께 넣어 해충을 예방하고 습도를 조절하게 했습니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건축물이 목판인 대장경을 780년이 넘는 세월동안 보호할 수 있었던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조상들은 나무를 바닷물에 3년동안 담갔다가 꺼내어 다시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 말리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판이 뒤틀리거나 썩지 않도록 했습니다. 글짜를 세긴 후에는 벌레와 습기를 막기 위해 자연 코팅제인 옻을 칠했습니다.

 

 

몽골과 거란의 침입으로부터 불법의 힘으로 고려를 지키고자 고려후기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전용 서고가 없어서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었다가 조선초에 해인사로 오게 됩니다.

건립시기는 조선 세조때인것으로 추정되며 세조가 해인사에 모신 대장경 50부를 책으로 간행하여 전국의 사찰에 나누어 보관케 하는 사업을 추진하였고, 성종때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6.25 전쟁때 지리산 빨치산 소탕을 위해 해인사에 폭탄을 투척 하려고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영환 공군대령이 폭격금지 명령을 내려 해인사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ㅣ  해인사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때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8만 대장경을 보관하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 부릅니다.

 

ㅣ 해인사 일주문

사찰의 입구에 제일 먼저 나오는 문이 일주문입니다. 기둥이 4개인 보통 가옥구조와 달리 기둥이 양쪽에 한개씩로 일렬로 서 있는 건축구조를 일주문이라고 합니다.  <가야산해인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홍화문이라고 합니다.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목조기둥 두개가 가분수 지붕의 엄청난 무게를 견디기 위해 기둥과 가둥사이에 공포를 여러개 두는 다포식 건축을 사용 한 듯합니다. 

 

 

ㅣ  해인사 봉황문

<가야산해인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면  <해인총림>  현판이 걸린 봉황문이 나옵니다.  보통 사찰의 두번째문은 사천왕이 지키고 있고 천왕문, 사천왕문, 금강문으로 불립니다.  해인사 천왕문은 봉황문입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입니다. 내부에는 사천왕의 탱화가 있습니다.

 

ㅣ 해인사 해탈문

일주문과 봉황문을 지나면 해인사 제3 관문인  <해동원종대가람>  현판이 걸린 해탈문이 나옵니다.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속합니다.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 33계단을 지나는데 도리천을 건너 삼존불을 모신 건물 앞으로 나아감을 뜻합니다.

 

 

ㅣ 해인사 구광루 

구광루는 해인사 한가운데 있는 건물로 법당에 들어 갈 수 없는 일반대중이 모여 예불하고 설법을 듣기 위한 건물입니다. 정면7칸, 측면 4칸 규모의 중층 맞배지붕 건물로 경사지에 위치하여 정면에서는 중층이나 후면에서는 단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1817년 소실되어 조선후기 중건 하였고, 1993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 되었습니다. 

 

ㅣ 해인사 대적광전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사상으로 하여 창건 되었으므로 석가모니 대신에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어서 대웅전이 아니고 대적광전이라고 합니다.  대적광전 건물의  사면에 서쪽에는 법보단, 동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대방광전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왼쪽 건물 대비로전은 2007년 새로 지은 건물이며  대적광전에 모시고 있던  9세기에 조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비로자나불 과 법보전 비로나자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두 불상은 만든 시기는 다르지만 쌍둥이 같이 닮은 형상으로 같은 장인의 솜씨인듯 닮아 시대적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 쌍둥이 불상은 조선시대 불상으로 알고 있었는데, 법보전 불상에 개금 작업을 위해 복장 유물을 확인 하던 중 묵서가 발견되어, 833년 제작된 국내 최고의 통일신라시대 불상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으로 판명된 해인사 비로자나불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최첨단 안전장치가 설치된 2007년  완공된 대비로전은 땅속깊은 곳에 별실을 만들고 열감지기와 진동 측정기 등 최첨단 장비를 설치 했습니다. 유사시 단위에 모셔진 불상이 유압에 의해 지하 6m깊이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별실로 자동으로 내려가도로 설계되었습니다.

해인사 대적광전 건물 뒤로 계단을 올라가면 위쪽에 장경판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이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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